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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변화시키는 방법

by 매니스 2022.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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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점은 생물의 삶에도 적용된다. 생물학자들은 하나의 삶을 변화에 저항하는 구조라고 정의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구조를 영위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적응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온이 어떻든 우리의 기본 체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한답시고 바깥 기온이 20도라는 이유로 체온 역시 20도로 바꿨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에너지로 영양을 취하는 변화 저항 세력이다. 이것이 생명에 대한 진정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반대로 죽는 것은 어떠한가? 죽는다는 말은 환경이 원하는 대로 적응하는 것, 즉 저항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물론 생명체를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개념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변화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가는 주체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생명은 변화에 꾸준히 저항하면서 그 자신이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모호함, 정반대의 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시스템은 조직이나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조직과 기업의 주 인력, 즉 사원들이 내세울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다. 동시에 조직 자체를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꼭 필요하다. 만일 이 기본 개념이 무너질 경우, 혹은 너무 극으로 치달을 경우에는 조직과 기업에 큰 오점이 될 수 있다. 너무 극한까지 몰아간다면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곧 나를 죽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두 개의 반대되는 것이 함께 공존하는 이 시스템은 융통성 없이 정확성만을 생각하며 이 사회에 뛰어든 이들에게는 매우 감당하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변화와 변화에 대한 저항을 함께 겪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설명한 세 가지의 고정관념은 우리로 하여금 ‘정확도’를 우선시하는 습관보다는 ‘융통성’을 생각해보도록 안내해준다. 인위적으로 반대 입장을 세워놓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단정 지으려는 버릇으로부터 벗어나보는 것이다. 너무 달라서 함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현실에서는 어쩌면 함께 공존하며 기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융통성, 이것이 바로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생각임을 잊지 말자.첫 번째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앞에서 말한 권위이다. 예상했듯이 노골적인 권위 사용은 힘과 관련 있다. 어떤 경우에는 대놓고 힘자랑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힘자랑에 참여하고 또 이기는 방법은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무조건 제일 강하면 되는 게 아닌가?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간단한 사실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힘으로 상대방을 누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상대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또 있다. 우리 모두가 항상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문명이 발전했다고 해서 누구나 21세기 첨단 시대에 맞춘 두뇌를 갖고 있지도 않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뇌나 크로마뇽인이 가졌던 뇌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한 예를 들어보자. 한 크로마뇽인이 한여름의 어느 날 한 순환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날씨는 덥고 차의 창문은 내려져 있다. 크로마뇽 1의 옆을 달리는 크로마뇽 2. 크로마뇽 2는 잘못해서 크로마뇽 1의 사이드미러를 살짝 스치고 간다. 이때 크로마뇽 2를 향해 소리치는 크로마뇽 1.“야, 이 새끼야!”어찌해서 이런 증오심이 폭발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크로마뇽 1은 사이드미러를 스치고 가는 크로마뇽 2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크로마뇽1은 이 작은 사고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이유로 크로마뇽 1은 증오심에 불타 크로마뇽 2에게 호전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크로마뇽 2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할 수도 있겠다.“아니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리 험하게 하십니까? 말로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두고 우리가 왜 이런 무식한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완벽을 추구하도록 돕는 이성적인 뇌가 있는데 말입니다!”물론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자면 이런 상황 역시 대화로 잘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크로마뇽식 두뇌회전이 더 빨리 진행되기 쉽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가벼운 접촉 사고에도 ‘너 말 다했어, 이 새끼야!’라고 온갖 거친 말을 내뱉으며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 도로체증에 갇힌 상황에서는 크로마뇽 2 역시 자신이 위협받고 있으며 도망갈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찌 이성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그런 뇌를 써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두 크로마뇽이 왜 무식하게 주먹을 휘둘러대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리 강하지도 않은 인간들이 자꾸 싸우려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강하지도 않으면서 강한 척하며 싸움에 싸움을 거듭한 끝에 겨우 살아남은 족속의 후예이기 때문이다.KITA 이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또 다른 조건은 다음과 같다. 바로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그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권력다툼은 협동이나 합작을 오랫동안 방해하는 요인이다. 앞에서도 봤듯이 어떤 조직이나 어떤 기업에서 가치를 창조해내는 우리의 능력은 지속력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써 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더 이상 할 말 없어! 가서 이 보고서나 타이핑해! 안 그러면 당장 잘릴 줄 알라고!”라고 강압적으로 말할 때에는 아랫사람이 잘릴 게 두려워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그렇게 시킨 보고서에는 오타도 많고, 허술한 부분도 적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쉬운 해결책으로 보였던 이 방법은 결국 큰 손해를 가져온다. 이것이 바로 게오르크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핵심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접받길 원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의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고 헤겔은 말한다. 노예에게는 일할 자유와 동시에 일을 망칠 자유가, 그리고 자신 역시 하나의 인간임을 인식시키게 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일종의 권위를 뒤집는 자유랄까.이런 이유로 권위를 직접적으로 휘두르는 방법은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많이 사용되지는 않는다. 권위는 대체로 눈앞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한없이 순진하게 이를 받아들이지는 말자. 상하관계가 뚜렷한 사회에서는 언제나 권력과 권위라는 것이 뒤편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단 돈을 주고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직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권위를 부려 돌아가는 일에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볼 때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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